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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철 - 어떤 사치시(詩)/시(詩) 2021. 10. 5. 19:55
지그시 방짜 수저 한 벌 내밀며
열심히도
당신 마음 두드린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었네
밥은 하늘이라 배웠는데
화염 속에 몸을 달구며
망치질에 망치질을 수백 수천 번 덧댄 후에야
하늘을 떠받치는 수저가 된 거라
이렇게 넓고 깊어서 크고 높아서
아무리 무겁고 아뜩한 것도
다 품어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가려운 등을 긁어주고
병을 기대고
머리에 서리가 내려도
철석같이 단단해지는 것이니까
이제 우리가 어디에 있어도
똑같은 수저로 밥을 먹는 처지니까
어엿한 진짜 식구가 된 것이어서
갑자기 통장이 찬 것처럼 넉넉해져서는
날마다 입으로 들어갈 도구에 부린
나의 사치가 뿌듯하여 또 한 번 혼자 웃었네
(그림 : 이미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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