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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희 - 물의 커튼시(詩)/시(詩) 2021. 10. 4. 11:28
자욱한 물안개가 산자락을 휘감고 산정호수에 커튼을 치는 시간
소리 없이 시야를 가리는 입자들은 구릉을 넘어 어디에 숨었다 나타날까
갈대를 흔들고 간 바람처럼 머뭇거림도 없이
풀어헤친 안개의 머리카락들
묶어 둘 수 없어 눈으로 만지고 읽는다
드러나지 않는 은신처, 자욱한 호수는 어떤 음모를 꾸미는 것일까
내게도 버거운 가슴이 있어 저 은밀함을 움켜쥐고 숨을 쉰 적이 있다
순간을 놓치면 발목을 낚아채는 커튼은 위험한 징후
휘적휘적 느리게 지나가는 허공
한 번의 발걸음이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한다
운무들은 손잡이도 없는 호수를 수시로 여닫지만,
저 뒤편
세상의 모호한 웃음들은 모두 커튼에 가려져 있다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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