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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라라 - 사랑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시(詩)/시(詩) 2021. 10. 4. 11:11
벗어놓은 구두를 오래 들여다보는 날이 있다
그것이 처음 왔던 순간을 생각해 보는 날이 있다
어쩌다 받은 상처를
소리 나게 못질해 주었으면
잘라 내거나 꿰매 주었으면
가지런한 구두를 신으면 다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날
아무리 광을 내고 굽을 갈아도
돌아갈 수 없는 구두의 뒤축이여,
구두를 닦아 햇볕 아래 놓으면
잠깐 처음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현관을 나서다 말고 구두 한 번 닦아보는 일은
착각을 불러보는 일
거기 있는가 처음이여,
(그림 : 류진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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