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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 알고 있습니다 꽃의 슬픔은 짧고 내 슬픔은 길다는 것을시(詩)/시(詩) 2021. 8. 25. 10:24
오래전 꽃이 이랬습니다
없는 유리창처럼 하도 투명해서
손을 내밀지 않아도
꽃의 끝까지 눈에 잡힐 거 같았습니다
무슨 법칙처럼
내 마음이 벙글고 내 몸이 푸르러지면
꽃은 닫히고 이파리는 쪼그라들겠지만
밤새 내린 이슬이 햇살에 반짝이는 동안만이라도
투명할 수는 없겠습니까
뜨거운 한낮이 지나고 차가운 밤이 오면
꽃은 또다시 탁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움이 뭉텅뭉텅 몰려와
나는 찌글찌글 납작해지겠지요
꽃은 어둠으로 풍성히 부풀겠지요
꽃의 살을 우벼 들어가 대면해보고 싶습니다
반복되는 약시(弱視) 현상이 걱정되긴 하지만
뭐 실명이야 되겠습니까
나도 긴 슬픔을 견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림 : 박태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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