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까맣게 잊은 사람처럼 흐릿하다
잊을만 하면 왔다가 잊히기 위해
발감개도 없이 어디서부터 더듬어 왔는지
걸음걸이가 시원찮다
팔짱을 끼고 너를 마주하던 시간들도
자꾸만 졸아붙어 구석을 찾던 나날들도
한때
다 지나간 일이다
배를 내밀고 서서
세상천지에 너의 소식을 물어본다
첫눈 첫 사람 첫 첫
처음 것들은 왜그렇게 간절했는지
오늘은 생애 첫날이듯
어제와는 다른 얼굴로 앞으로 나가 볼까
전부 다 용서 받은 듯 어깨를 펴고
누가 알겠어 여전히 나는 나인데
내년 이맘때도 너는 나에게 와 줄 것이고
그날 조금 환호하는 척 웃어 보일 것이고
(그림 : 안소영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영랑 - 큐브의 목적 (0) 2021.08.23 권지현 - 소찬 (0) 2021.08.23 박숙경 - 어둠은 어디에서 오는가 (0) 2021.08.21 강건늘 - 국수 (0) 2021.08.21 박금리 - 귀촌 이십 년 (0) 2021.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