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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숙 - 바소쿠리시(詩)/시(詩) 2021. 7. 13. 09:00
헛간 앞에서 늙어가는 나무지게에는 아버지의 내력이 적혀 있다
들판에서 산비탈까지, 밭고랑에서 무논까지 이어진 기나긴 문장
지게에 얹혀 있는 계절, 문맥을 이어준 것은 싸리로 엮은 둥글넓적한 발채였다
지겟작대기가 부지런한 동사라면 바소쿠리는 느슨한 보조사
뒷산 진달래는 칙칙한 생을 울긋불긋 색칠해준 형용사였다
입이 큰 바소쿠리에 개구리울음 팔짝 뛰어들고 새벽 별빛 총총히 실려 왔지만
등에 얹힌 일곱 식구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마침표를 찍지 못한 가난은 이어지고 무릎은 각주조차 달 수 없었다
뻐꾸기 울면 퇴비 한 거름 지고 사립문 나서는 아버지
주인 잃은 괭이자루처럼 삭아가는 바소쿠리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바소쿠리 : 싸리로 만든 삼태기.
(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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