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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옥 - 출어(出漁)
    시(詩)/시(詩) 2021. 5. 29. 18:57

     

    성난 파도엔가

    아니면

    항로 벗어던진 얌체 선박의

    투박한 스크루의 몸부림인가

    희망이 찢긴 그물에 남은 잡고기 몇 마리로

    치미는 화 이끌고

    새벽별이 잔에 빠져 기력을 잃을 때까지 마신 술기운이

    태풍으로 밀려와 정수리에 닻을 내린다.

    짭짤한 갯바람이 따라와 문풍지를 잡고

    새벽잠을 소금기로 헹구고 있다.

    흐릿한 동공이 촉촉이 젖고

    귤껍질을 벗기듯 구름을 벗어 던진 아침 햇살이

    찢어진 그물에 걸린 잡고기처럼 퍼덕일 때

    화들짝 놀라 정신 가다듬은 어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머릿속을 아프게 찌르는 통증에 밀려

    그물의 상처를 붙잡고

    구겨진 생각을 한 코 한 코 땜질한다.

    하루만 하루만이라도

    옛날 비늘에 반사되는 빛으로

    눈 못 뜨는 풍성한 잔치 한 번

    화끈하게 건져보고 싶은 미련 앞세우고

    손놀림이 부산하다.

    간기 벤 갯바람에

    어제 마신 술이 확 깨는 기쁨 출렁이도록

    그물의 멱살을 잡은 팔뚝에

    핏대를 세운다.

    기대의 칼날로 파도를 자른다.

    (그림 : 김예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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