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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겨울 사이
쉬지 않고 등고선을 그리며 산다
나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만
그 깊은 속내를 아무도 모른다
안으로 또 안으로
옹이가 되기까지 삭이다가
무성하던 그늘이 사라진 어느 날
살던 흔적을 숲 속에 남긴다
톱날이 닿자 속절없이 무릎을 꿇고
물씬, 송진 냄새에 나이를 전한다
한 번도 보이지 않던 그의 나이를 지금 읽는다
헤아려보니 일흔 살은 족히 살았다
살아온 만큼의 아픔과 상처가 있다
이 등고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역사를 썼을까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을까
비명마저도 나이테에 숨기고
평생 바라보던 하늘빛을 다 담아서
비로소 숲에 마지막 위로를 건네며
산비탈에 누워 긴 휴식에 들어간다
거목은 죽어서도 집이 된다
(그림 : 심수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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