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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바닥에
양팔을 벌린 내가 서 있다
가운뎃손가락 끝에 침을 놓으면 파르르 눈꺼풀의 떨림이 멈추기도 했다
미세한 바늘구멍은 나를 통과하여
먼 우주로 이어진 길인지도 모른다
강물처럼 흐르다 멈춘 손금처럼
짧았던 사랑도 한때 유행가처럼 빛나던 사람도
어느새 야위어진 운명 앞에 섰다
밤하늘 올려다보면 우리의 별자리도 흐릿해졌는데
내 속에 터를 잡은 당신이 부풀어 오른다
당신이라는 토양 위에 나도 자란다고 믿고 싶은
당신은 광활하다
손바닥에 나무와 풀이 무성할수록
풀벌레 소리, 욕망과 기도 소리 쌓여갈수록
내 저울은 우매함 쪽으로 기울어진다
가만히 손바닥 들여다보면
기우뚱, 절반의 생애가 이미 추락 중이다
(그림 : 전봉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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