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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을 풀어 주역의 괘를 짚는다
줄은 수시로 옹알이를 한다
바람 숭숭 빠져나간 자리
줄줄이 흔들리는 음운들
해석은 푸는 것이 아니라 낳는 것
불면의 밤이 오면
기다림의 몸무게는 고작 일 그램
황홀한 나방의 육두문자가 이마를 후려칠 때
눈꺼풀 밖에서 번쩍 드러나는 허기
외롭다는 것은 한 우물을 파고 있다는 것
기다림이 길다는 것
난간과 난간을 건너가는 것
팔목팔족(八目八足)으로도 다 꿰뚫을 수 없는 음양의 어지럼증
수만 번 읽어 내려가도 미답인 지문
무릎 먼 곳에서 징 소리 같은 중심이 몰려온다
어둠의 촉수들이 세계의 폐부를 건드릴 때
일신일국(一身一國), 괘 한가운데 턱 버티고 서서
나는 놈만 제대로 손볼 줄 아는
줄 하나로 얻는 천하
(그림 : 신인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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