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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진은 - 자운영 꽃밭
    시(詩)/시(詩) 2021. 3. 31. 14:46

     

    봄 들판에 일렁이는 그림이 그려진다

     

    흙투성이 침대에서 파이프 담배 물고

    겨우내 골똘한 생각으로 게으르게 뒹굴던

    뼈만 남은 사내가

    햇살 사이 구름 잡아 당겨 순식간에

    흙 속 손가락에 숨겨논 물감에서 불을 붙인

    반쯤은 희고 반쯤은 붉은

    미세한 분할에 따라 배열된 저 이파리 속,

     

    미소 머금은 식구들 실은 달구지, 덜컹이는 자전거와

    시골버스가 세월의 곰팡낼 풍기며

    지나가고

     

    한껏 느긋하게 달근한 공기들과 나비 벌떼까질 점묘하던

    황야의 화가는

    허나 절정의 순간,

    쟁기를 불러 서둘러 작품을 흙고랑으로

    밀어넣어 버린다

     

    그래 절정의 순간,

    휘뚝휘뚝 흙 속으로 묻으며

    잘 익은 밀이나 감자 냄샐 당기는 심사는 또 무언가

     

    그 물음 끝에 문득

    세월과 태양이 버무려놓은

    잘 익은 거름 냄새 나는 그림을 덮으며

    피어나는 아지랑이떼

     

    습작도 없이 연작들을 해마다

    그리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붓을 휘두르는 화가가

    대체 예술이나 숙련된 기술 탐해야 할 필요가 어디 있냐며 클클,

    웃음인 듯 훈계인 듯 하늘 화폭을 물들이는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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