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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소 - 자의 눈금시(詩)/시(詩) 2021. 3. 10. 19:36
눈금마저 지워진 낡은 자 하나
책상 서랍에 굴러다니다가
고작 백지에 줄긋는 일에 불려나오곤 했어요
세상은 자로만 측정된 숫자의 집합
학벌, 인맥, 너와 나의 거리까지
길이와 무게를 가늠하며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아요
그러나 내 눈에는 눈금 없는 자 하나
들어앉아있어요 어리석다고
눈대중이라고 말해도
나는 그 자를 버릴 수가 없어요
꼭 맞는 건 아니지만 비슷하기만 해도
내 것인 것들
그 잣대로 인생을 재다보면
운명도 얼추 들어맞는다고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살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잴 수 없는 것들을 재고 있어요
내 안에서 굴러다니는 자 하나가
백지 같은 마음에 반듯하게 살라고
줄을 그어주고요
(그림 : 이미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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