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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수연 - 청혼
    시(詩)/시(詩) 2021. 2. 26. 09:50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쉿, 숲 속의 양들이 춤을 추고 있네
    캐럴에 흔들리는 종처럼 신이 나기 시작했어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볼래

    너에게 줄 선물이 있어
    이런, 목에 깃털이 잔뜩 뽑혀 있네
    빨갛게 부푼 곳에 맑은 꿀을 발라 줄게
    조금만 조금만 가까이 와 봐

    바람 없는 날의 나뭇잎은 정말
    움직이지 않는 걸까
    우리가 함께 서 있을 때에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나의 지친 헝겊들을 네가 알아봐 줄까
    너의 외투 속을 날아다니는 작은 새
    그 새의 둥지를 부수지 않고
    너를 꼭 안아 줄 수 있을까

    선물 상자를 열면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온다
    앵두들이 한 움큼 익어 가고 있을 거야
    너의 안경이 하얗게 변할 동안
    나는 눈을 세 번 깜빡깜빡하고
    그사이 두 번 입맞춤을 할게

    양들은 색 전구를 켜러 집으로 돌아가고
    목에는 아카시아 향기가 남았구나
    너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아직 잊지 않았다면
    매일매일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함께 호호 불어 가며 익은 앵두를 먹자

    수많은 낮과 밤
    피어오른 수증기가 우리의 머리에 폭설로 앉는 동안
    나의 눈은 너의 곁에서
    깜빡깜빡 입맞춤을 하고 있을 거야

    (그림 : 남택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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