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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 눈물 겹시(詩)/시(詩) 2021. 2. 2. 15:09
양파는 눈물 뭉치라고 말해놓고
겹겹으로 운다
지난 늦가을 여린 양파를 심을 때
이웃에 사는 황조롱이가
텃밭 근처에 앉아서 혀를 찼는데
나는 한겨울 추위가 이렇게 뭉쳐질 줄 몰랐다
아무래도 양파는 슬픈 식물이어서
고작 껍질만 뒤적거려도 눈물부터 쏟는가 보다
아무렴
껍질 없는 슬픔이 어디 있는가
누구나 두 눈에 수천 겹
양파 껍질이 들어있다는 것
벗기고 벗겨도 남아있는 저녁은 또
속껍질을 글썽이며 어두워진다
소리 없이 눈물만 찔끔거리는 사람과
눈물은 없고 울음만 요란한 새가
같은 일로 울 때가 있듯
익은 봄,
몸통 반 쯤 밖으로 드러내놓고 있는
양파밭에 가면 동고비 울음소리 요란하다
살짝 벗겨진 양파는 눈물 뭉치
그렇다면 수천 겹 눈물이 감싸고 있는
눈은 또 얼마나 깊고 슬픈 곳인가
(그림 : 신경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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