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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 호박 (아버지 학교 12)시(詩)/이정록 2021. 1. 10. 14:24
식솔을 위해서라면
호박씨처럼 똥구덩이에 몸 담그는,
나는야 커다란 황금빛 호박꽃이다.
새끼들 으스대라고 모양만은 왕별 호박꽃,
독침도 없이 붕붕 소리만 요란한 호박벌이다.
어느새 너희 머리통은 야자수 열매처럼 단단해져
늙은 호박처럼 텅 빈 아버지를 수군거린다만
끝내는 호박고지, 황금빛 목걸이라도 건네고 싶었다.
한겨울 살구나무는 붉은 우듬지를 올려다본다.
넌출거리는 마른 호박덩굴 쳐다본다.
아버지는 호박처럼 묵직한 걸 건네고 싶었다.
여린 잎에 호박순까지 끊어 바치는 게 좋았다.
허공을 짚고 오르는 덩굴손을 보여주고 싶었다.
똥구덩이에 빠져도 기죽지 마라.
겨우내 사랑방 윗목을 지키는
누런 호박의 가부좌를 보아라.
(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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