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황금빛이거나 흙빛이거나 무지개이거나 어두운 갈색이거나 언제든 병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다리는
잘린 목처럼 뚜껑이 나뒹굴기를 주둥이가 열려 온몸이 쏟아지기를 병 밑에서 그르렁거리는 세상이 터져 나오기를 기다
리는
숨 막히는 당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자객에게 순식간에 목이 따지기를 기다리는 당신은 퍽, 하는 천지개벽을 기다리는
당신은, 그것이 거품일지라도
당신은 어디서 왔을까 두줄보리알갱이에서? 보리밭 허공을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종달새 울음에서? 멈추지 않는 바람을
찢는 매미 울음에서? 사선으로 베어진 보리줄기 그 밑동에서?
당신은 거품 속에서 꽃잎으로 태어나길, 붉은 갈증의 입술에 달라붙기를, 갈라터진 어느 입술을 지나 메마른 입천장을
지나 길고 어두운 구멍을 꿈꾸는
(그림 : 이두한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인찬 - 흐리고 흰 빛 아래 우리는 잠시 (0) 2020.12.03 강문숙 - 겨울 삽화 (0) 2020.12.02 박주하 - 추신 (0) 2020.11.30 이영춘 - 때로는 물길도 운다 (0) 2020.11.29 신순말 - 여든 살 꽃길 (0) 202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