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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부부에게는 김치전 냄새가 납니다 김칫독 속 흰 골마지 낀 한쪽을 찬물에 헹구고, 들기름 둘러 지져낸 쿰쿰한 지
짐이 말이지요 당신과 나, 웃자란 시간을 접시에 담아서 딸각딸각 쇠젓가락을 움직여 찢어먹습니다 오뉴월 푸성귀같이
푸르게 뻗치던 오래된 불화와 오독들도 어느 결에 이리 순해지는군요
흐린 눈길을 주고받으며 늘어난 약봉지의 분량을 서로 챙기는 쓸쓸한 평화라니요 유효기간이 아스라한 몸을 그저 지켜보는 게, 막 빨아 새물내 날망정 무릎이 너무 튀어나온 바지을 그저 하염없이 만지작거리는 것도 같습니다 당신과 나, 쿰
쿰한 김치전에다 막걸리 한 잔 얹으며, 너무 많이 온 마음과 아직 당도하지 못한 마음을 못 본 척할 뿐입니다
꼭 손바닥만 한 김치전의 따뜻하고 헛헛한 그 무엇이 여기 있다며, 쓸쓸해진 이 저녁은 누가 버리고 간 뒷모습인가요 김치전을 먹으면서, 서로를 건너는 일이 저 꽃 저문 자리처럼 캄캄해하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사진 : 멋진싱글라이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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