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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호 - 오늘의 당신시(詩)/시(詩) 2020. 11. 10. 17:45
오래된 당신의 필체를 쏙 빼닮은 바람의 수화를 읽는다 폐쇄된 간이역의 녹슨 출입문처럼
삐걱거리는 신호 대기음 앞에서 자꾸 주춤거리는 글자들, 지금은 아무에게도 전이되지 않을
슬픔의 철자법을 따로 익혀야 할 시간이다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가는 키 작은 그림자, 휑한 옆구리 쪽으로 글썽해진 바람이 비
껴간다 갈팡질팡하는 나뭇가지에 불규칙적으로 내려앉은 눈발들, 우편함에 쌓이는 주소 불
명의 편지들, 낯선 곳을 지나고 있을 사람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졌다
언젠가 무너지기 위해 똑바로 서는 기둥들처럼 나는 또 어디선가 무릎을 감싸고 주저앉기
위해 이 자리를 단단히 버텨야 한다 어딘가에서 첫 햇살에 아려오는 눈을 비비고 있을 오늘
의 당신이듯
(그림 : 차일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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