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 - 삼겹살에 대한 명상시(詩)/시(詩) 2020. 9. 21. 18:43
여러 겹의 상징을 가진 적 있었지요
언감생심, 일곱 빛깔 무지개를 꿈꾼 적 있었지요
불판 위에서 한 떨기 붉은 꽃으로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 적 있었지요
흰 머리띠를 상징으로 삼았지요
피둥피둥 살 바에는 차라리
불판 위에 올라 분신자살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지요
육질이 선명할수록 사상도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거든요
달아오른 불판이 멀리 쏘아 올리는 기름은
발가벗은 내 탄식이었지요
몸 뒤틀리고 몇 번쯤 뒤집혀지고 나면
(제발, 세 번 이상은 뒤집지 마세요)
내 사명도 끝난 줄 알았지요
노릿하게 그을린 얼굴들이 참기름을 두르고 앉아
마늘처럼 맵게 미소를 주고받을 때
소원할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은
저 말라비틀어진 살점들을 어찌할까요
어쩌다 간혹 안부나 물어봐주세요
그러면 나는 그냥
무지개를 꿈꾸다 죽은 한 마리 돼지의 어쩔 수 없는 옆구리였다고,
불판 위의 폭죽이었다고,
웃기는 돼지였다고 웃으며 말할 날 있겠지요(그림 : 박형진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은경 - 매듭 (0) 2020.09.22 윤보영 - 내 부모도 그랬을 겁니다 (0) 2020.09.22 곽도경 - 구월 (0) 2020.09.21 김남수 - 수련 (0) 2020.09.19 곽도경 - 어느 슬픔이 제비꽃을 낳았나 (0) 2020.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