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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가려나, 내 삶은
소년이 없다 그이는
비둘기호 타고 달아났다 동쪽으로
진주까지만 가자 싶어 처음 건넌 강은
별이 똥을 누러 온다는 옛말 은빛
모래 아래 재첩이 여물고 송홧가룬 멀리
고성 통영을 넘어간다는 뜬소문
그 밤을 거기, 혼자 저물도록
눈 감았다 이제도록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물빛 너머로 흩어질 때까지 비워둔 자리마다
가시 돋친, 솔잎은 바람을 많이 들여서
둥치마다 억척스레 감아 오르는 덩굴손
학교 같은 건 때려 치자 강 따라 트럭을 몰며
티브이 세탁기를 등짐으로 저 나르기 한 해
모래는 깊었다, 스물다섯 초봄
엘지 오백 리터 냉장고를 들쳐 메고
조각배에 옮겨 싣고 견인줄을 잡아끌며
걸어온 길을 되짚어 건넜다
강 끝은 절벽이더군, 너머로는 옥룡 다압 옥곡
별천지처럼 물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뻗어가는
널따랗고 탐스런 이파리 활엽교목들
바람 한 점 없는 가지를 매화꽃 날리던
서른셋, 봄 가고 남김없이 져 버려라 영영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남은 해 다하도록
벼리고 또 벼리던 빛살은 모래 알갱이 사이사이
뒤채듯 자듯
물이랑을 바늘로 찍어 누르는
달빛 점묘, 모래는 새하얗게 달아올라
이제도록
벚굴이 살찌고 은어가 돌아온다는
하동, 가려나.
(그림 : 임창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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