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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옥 - 하동
    시(詩)/시(詩) 2020. 8. 29. 14:38

     

    하동 가려나, 내 삶은

    소년이 없다 그이는

    비둘기호 타고 달아났다 동쪽으로

    진주까지만 가자 싶어 처음 건넌 강은

     

    별이 똥을 누러 온다는 옛말 은빛

    모래 아래 재첩이 여물고 송홧가룬 멀리

    고성 통영을 넘어간다는 뜬소문

    그 밤을 거기, 혼자 저물도록

     

    눈 감았다 이제도록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물빛 너머로 흩어질 때까지 비워둔 자리마다

    가시 돋친, 솔잎은 바람을 많이 들여서

    둥치마다 억척스레 감아 오르는 덩굴손

     

    학교 같은 건 때려 치자 강 따라 트럭을 몰며

    티브이 세탁기를 등짐으로 저 나르기 한 해

    모래는 깊었다, 스물다섯 초봄

    엘지 오백 리터 냉장고를 들쳐 메고

    조각배에 옮겨 싣고 견인줄을 잡아끌며

     

    걸어온 길을 되짚어 건넜다

    강 끝은 절벽이더군, 너머로는 옥룡 다압 옥곡

    별천지처럼 물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뻗어가는

    널따랗고 탐스런 이파리 활엽교목들

     

    바람 한 점 없는 가지를 매화꽃 날리던

    서른셋, 봄 가고 남김없이 져 버려라 영영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남은 해 다하도록

    벼리고 또 벼리던 빛살은 모래 알갱이 사이사이

     

    뒤채듯 자듯

    물이랑을 바늘로 찍어 누르는

    달빛 점묘, 모래는 새하얗게 달아올라

    이제도록

     

    벚굴이 살찌고 은어가 돌아온다는

    하동, 가려나.

    (그림 : 임창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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