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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준 - 그냥 빈말이라도
    시(詩)/시(詩) 2020. 8. 26. 10:53

     

    저 기억하세요?

    주점 앞 입간판 위에 손을 짚고

     

    그럼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주점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다니

     

    낮에 마시는 술은 주머니 속 같고

    주머니를 비벼도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고

    바라는 게 많아지면 엄살도 깊어져서

    어제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다

     

    수다스러운 사람은 제 사연을 더 깊숙이 숨기려는 게 뻔하지만

    과묵하다고 해서 무슨 거대한 사연을 품고 이런 곳에 오는 것은 아닌 것처럼

     

    바테이블에 둘러 갇혀 음식을 만들던 그는

    매운 게 괜찮겠냐고 묻고, 상관없다고

    빈속을 쓰게 다시 채우고

     

    그는 돌아본다

    음식은 조용하다

     

    날지도 못하는 닭을 지탱하고 있었을 발들이

    흙냄새를 지우고, 빨갛게 조용해져서는 전등갓에 쏟아지는 빛의 경계로 들어오는 당신의 발

     

    돌아보면 돌아올 것 같아서

    발이 되지 않는 손으로 짚는 땅이 있고

    짐승이 되어도 곧 지워질 약속이 있다

     

    남 부르듯 큰소리로 저 멀리 내 이름을 부르던 버릇

     

    언제 예뻐?

     

    그는 왜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을까


    이런 날은 햇빛도 위태로워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쥐고 걷는다

     

    꿈이었으면 싶은 일에는 눈을 감는다

    눈이 살로 돌아가면 어두워지고

    다시 어두워지면 다른 꿈을 꿀 수가 있다

     

    아직 약속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남았다

    (그림 : 조은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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