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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장마가 끝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장마 끝 무렵 물오른 자두나무 가지에 매달린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의 비와 바람과 햇볕
연두와 노란빛이 빨강과 자줏빛으로
익어가는 여름이 마침내
커다란 소쿠리에 가득 담긴 날이면
들보 아래 대청마루가 환하게 밝아졌다
유독 눈물 많은 누이와 두 동생 그리고
나는 소쿠리에서 가장 탐스러운 여름 하나를
손에 쥐고 크게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고인 침과 과즙이 뒤섞인
새콤 달콤 시큼함에 찌푸린 얼굴
그 여름 오후가 붉게 더 검붉게 익어가면
볼품없고 때깔 흐린 무른 여름 하나
가장 늦게 어머니 입가를 물들였다(그림 : 이창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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