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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조 - 비탈진 복숭밭시(詩)/시(詩) 2020. 8. 17. 17:45
비탈밭 엎으며 큰 오빠는 그랬다
ㅡ아부지, 우리도 소출 좋은 복숭농사 짓자, 고
그 묘목 함께 자랐지만 그땐 몰랐다
지상에서 가장 애틋한 피톨기로 키운 꽃이, 열매가
식솔들의 거룩한 밥이었다는 것을
첫 아이 가질 무렵
그 나무들도 아부지도 비스듬히 누워버렸다
뼛속 깊이든 그 맛, 피붙이처럼 따라와
풋 복숭 찾아 밥 먹듯, 입덧 달랬던 나처럼
첫 아이 가져 입덧하는 딸자식 달래본다
잠깐, 소낙비 다녀가고 삼복더위 맹렬한 날
아부지 땀방울같이 지극한, 그 열매 받아 만지네
문득 옛 밭둑에 선듯, 출렁 마음이 내려앉았다
땀과 눈물의 짠맛을 밑거름으로 빚었을 텐데
정작 그 속은 수줍고도 부드러워
그날 밤, 별빛 총총한 복숭밭으로
물 주전자 새참 들고 심부름 가는
어린 나를 꿈꾸었다(그림 : 최장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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