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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의섭 - 국도에 내리는 비
    시(詩)/시(詩) 2020. 7. 18. 17:31

     

    한 걸음 내딛으면 빗속이다

    여기 언제부터 내리고 있었는가

    물집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는 듯

    서녘에는 해가 떠 있는데 이상한 국경이지 않냐는 듯

    하늘로부터 쌓이는 비의 장벽은 무너지는 성채를 짓는다

    여행은 끝내 집 앞에 이르는 일

    떠나왔지만 제대로 된 길로 들어서기도 전에 늘 돌아서고 마는

    마감 없는 고독 나는 언제부터 여기 격벽을 세워 두었는가

    국도의 가로수는 불을 켤 줄안다

    가로등은 잎을 피우고 전봇대는 줄기를 늘어뜨린다

    저렇게 뒤엉킨 자세로 비에 젖는다

    나는 나에게서 너무 멀리 왔거나 한없이 가까워진 것이다

    빗속으로 들어서는 국도는 낯설었으며

    비가 그치면 함께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는 전율

    미리 떠오른 무지개처럼 모든 여행자들은 망각을 상상하곤 곧바로 망각한다

    한 걸음 내딛으면 비에 갇힌다

    저 안에서 내다보면 아직 젖지 않은 바깥세상은 저녁을 맞이할 것이고

    성마른 별들 떠오르고 나는

    쓸쓸한 귀로에 접어들 것이다

    여기가 몇 번째 와 본 국도인지 또다시 잊어버린 채

    (그림 : 한천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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