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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 - 혼밥, 혹은 혼(魂)밥시(詩)/시(詩) 2020. 7. 15. 21:41
혼자 밥 먹는 거ㅡ 처마 끝에 매달려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물방울 같은 거ㅡ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고 지겹도록 일을 해도 제자리를 못 벗어나
꿈도 희망도 포기한 민달팽이 세대처럼ㅡ 혹은 n세대처럼
모든 걸 포기하고 무연(無緣)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혼자 밥 먹는 거 같은ㅡ
마침내 저녁이 없는 삶이어서, 걸으면서 컵라면이나 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면서
컵라면이나 김밥 한 줄의 없는 영혼을 상상하는ㅡ 없는 영혼을 상상하므로
자신도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ㅡ 스스로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므로
비로소 존재한다고 느끼면서ㅡ 그렇게 물방울처럼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ㅡ
그렇게 물방울처럼 떨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는ㅡ 이 결심이ㅡ 다짐이ㅡ 추락이ㅡ낙하가ㅡ
혼밥의 혼이라고, 눈을 빛내고 있는 것 같은ㅡ 그래,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을 못 벗어나는 워킹 푸어처럼
그렇게 스스로 포에지 푸어가 되어ㅡ 아무런 의미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의 의미를 위하여ㅡ 낮은 처마 끝에 매달려서도
추락의ㅡ, 그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는ㅡ(그림 : 홍성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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