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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 - 꽃은 신상(新商)이 아니야시(詩)/문성해 2020. 4. 13. 11:59
마른 꽃나무에 봄꽃들이 벌써 다 번졌네
한 때는 그 꽃 빛을 내 다 받아서
내 마음이 이리 심란한 줄 알았건만
이제야 알겠네
꽃 빛은 어디 먼 데로 가는 게 아니라
제 속으로 풍덩 우물처럼 빠지는 것
왔던 길을 도로 밟아 돌아가면
몇 겹의 알토란 같은 방이 있고
그 속에서 몇 계절을 견디고
봄이면 다시 바알갛게 담뱃불처럼 돋아 오른다는 것을,
내가 한창 물오른 꽃이었을 때
그 찬란은 어디 갔던 게 아니고
시들기 시작하는 내 몸 구석구석을
추억으로 불 밝힌다는 것을
그렇다면
저 꽃들은 모두 중고품들인데
너무 신상으로 보이는 거 아니야?
그 비결이 뭘까
맴도는 나를 본 체 만 체
꽃나무는 십 년 동안이나 어디 가지도 않고
제 속에서 분홍 손수건을 꺼내어
펼쳤다가 다시 접어 넣었다간 하는 것이네
미간에 마른 주름도 없이
(그림 : 안기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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