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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만 남은 미나리 단을 부엌 창틀에 올려놓았다
몸통을 다 잘라먹고도 내다버리기 아까워서
가까운 사람한테 뒤통수 얻어맞고
어제는 못 먹는 술까지 마셨다
창틀에 놓아둔 미나리 새순 잘라서 콩나물국 끓여먹는다
그래도 아파서 나 지금 엄마한테 간다
제단에 쓴 커피 한잔 따라놓고 훌쩍거린다
뼛가루만 남아 있는 엄마
두고두고 우려먹는다
코도 막히고 눈도 흐리고 세상이 어둑해질 무렵
어디서 환청인 듯 들려온다
"우리 딸 아파서 우짤꼬, 그냥 잊고 살거래이, 그게 상책이데이…"
"얘야, 뭐하고 있노 뒷산에 해 진다, 퍼뜩 집에 가서 니 새끼들 밥해주거라"(그림 : 방정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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