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미 - 밤의 실루엣시(詩)/시(詩) 2020. 3. 25. 09:35
불이 탁 켜지자 소스라치듯
난간 밖에 여자가 서 있다
어쩌다 그렇게 얇은 투명 속으로 들어갔니
어쩌다 밝은 곳에 반쪽을 두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
건너다만 보는 사이가 되었니
창문 앞에 서면
기다렸다는 듯 마주 다가서는 창밖의 여자
똑 닮은 모습의 내가 있다고
엄마는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다른 세상을 떠돌다 온 듯 어둠을 등지고 묻는
안부가 종종 있을 거라고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
잘 살았냐고, 괜찮은 거냐고
안에서 열어야 되냐고 아니면
밖에서 열어야 합쳐질 수 있냐고 묻는 실루엣,
서로를 측은한 눈빛으로 건너다보는
창밖의 여자들
엷은 어둠 밖이나 안이나 서로 궁금해
나가고 들어가고 싶지만
와장창, 저 어둠 부서뜨려야 한다는 것 너도 알지?
지나간 언니처럼 미래의 동생처럼
흡수되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 불투명한 존재들이
서로를 부서뜨리지 못해
한밤 오래도록 서로를 들여다보고 서 있다.
절뚝절뚝 힘겹게 하루를 건너와
창문 앞에 서면
기다렸다는 듯 마주 다가서는
창밖의 여자
(그림 : 김종훈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수서 - 임실슈퍼 (0) 2020.03.25 문리보 - 들꽃 (0) 2020.03.25 허이영 - 흐린 날 (0) 2020.03.25 문리보 - 겨울새 (0) 2020.03.25 문리보 - 앉은뱅이 꽃 (0) 2020.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