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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갑 - 고향 집시(詩)/시(詩) 2020. 3. 15. 11:09
나 지금 아우라지 정선에 와서
임종 직전의
폐가 한 채 문병하는 중입니다
억새와 거미줄, 그리고
함부로 살 찢고 다니는 바람에 점령당한
스산하고 가련한 폐가지만 이 집도 예전엔
한 가족이 슬어낸 하나한 추억을 머금고 있었을
심줄 푸른 고향 집이었습니다
무조건 받아주고, 무조건 안아주던
고향 집, 아버지와 어머니 선산에 누우신 후
사람 냄새 사라지니
빠르게 폐가 되었지요
제 몸의 문이란 문 죄다 열고
집은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입니다
저리 숨기 잦아지는 쇠잔한 몸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요
폐가 된 고향 집은 애면글면 버티어보지만
결국은 와르르 무너지며 집의 일생 마칠 것이니
타관 떠도는 자식 놈들 훗날엔 필경
저녁놀에 울먹울먹 얼굴 묻고
고향 집의 살 냄새 사무치게 그리울 것입니다
그러다 그러다
어둠이 밀물지는 생의 오후 어느 날엔
불현듯 돌아가고 싶겠지요 돌아가서
버리고 온 고향 집 식은 아궁이에 다시금
군불 지피고 싶겠지요
고향 집 없는, 너무 늦은 그때
(그림 : 박운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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