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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연호 - 살다 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다
    시(詩)/강연호 2020. 2. 25. 10:44

     

    솥뚜껑 위의 삼겹살이 지글거린다고 해서

    생의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찍 취한 사람들은 여전히 호기롭다

    그들도 박박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남루나 불우를 그저 견디겠다는 듯

    반쯤 남은 술잔은 건너편의

    한가로운 젓가락질을 우두커니 바라볼 뿐

    이제 출렁거리지도 기울어지지도 않는다

    참다 참다 그예 저질러버린 생이 있다는 듯

    창밖으로 지그시 내리는 빗줄기

    빨래는 오래도록 마르지 않고

    쌀알을 펼쳐본들 점괘는 눅눅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아마

    이 밤이 지나가면 냉장고의 찬물을

    벌컥벌컥 들어켜야 할 새벽이 온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이 술잔은

    여기 이 생에 건네질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삼겹살을 뒤집어봐야 달라질 것 없고

    희망은 늘 실날같지만

    오늘의 운세는 언제나 재기발랄 명쾌하다

    62년생 범띠, 살다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다

    (그림 : 박형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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