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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일 - 누부 손금
    시(詩)/박태일 2019. 12. 20. 11:38

     

     

    이 꽃 저 꽃 다 지는 오월

    아카시아 길 따라 삼랑진 간다 

    용전 사기점 누부 만나러 간다   

     

    자성산 능선이 불쑥 휘돌아 내리는 소리

    멀리 먼 주소의 비라도 기별하려는지 

    자두 속살같이 젖은 그리움이 봇물 트이듯 흘러 흘러서    

    어릴 적 누부가 던져 보낸 웃니 아랫니를 생각하며 

    매지구름 뒤우뚱 어미 찾는 시늉을 본떠 

    생림 사촌 독뫼 이름 고운 마을도 지나고  

    막걸리통 농약병 뒹구는 논둑길 웃으며 걸어      

    새삼 덩굴 울을 친 골짝 검은 가마자리 누부집 간다 

    그릇도 질그릇이란 한자리 눌러 살며  

    불심 센 참나무 참 장작으로 키워 낸 자식이라서 

    못물에 소낙비 들고 뒤주에 생쥐 들 듯 

    센 불 낮은 불 오내리는 소리 사발 금 먹는 소리      

    귀얄 술술 날그릇 덤벙덤벙 담그던 슬픔도

    물레질 한 발길로 고임돌에 올라 앉히고  

    질흙 같은 열아홉 나이가 서른 마흔 쉰 불통을 타고 넘어   

    바람 올 적마다 고욤나무 까치집 까치를 보며   

    누부는 앉아 울었을까 서서 울었을까     

    살강에 잿물 듣는 밤마다 사기점 물은 흐르고 흘러  

    마을에는 여적지 떠나지 못한 이별이 있었던가  

    사금파리 널린 골짝 물살 따라 두 백 년이 또 두 번 

    도랑도랑 구르다 묻힌 눈배기돌 

    작두콩만한 눈배기돌을 주워 들면 

    거기 찍혀 살아온 누부 손금    

    귓불 차가웠을 누부의 손자들과   

    해 따라 철 따라 도랑물에 씻긴  

    저녁 어스름          

     

    이 꽃 저 꽃 다 지는 오월

    사금파리 무덤 위로 보름달 떴다  

    누부가 굴리던 옛도 먼 옛날 누런 물레틀  

    (그림 : 이혜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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