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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신 - 생각의 나무시(詩)/시(詩) 2019. 12. 10. 15:31
생각에 잠겨서
가로수 그늘을 지나갔습니다
내가 머리로 생각하고 있을 때 나무는
이파리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 생각의 가득함으로
햇빛이 스며들지 못하고 있을 때
나무는 벌거벗은 채 서 있었습니다
해마다 나는 생각의 나이를 먹어가고
그 무게를 알지도 못하고 걸었습니다
문득 다시 보니 나무는
생각 없이 그대로 생각이었습니다
깔깔한 내 그림자 밟고
온몸에 주름지고 지나갈 때
곧게 뻗어 올라간 중심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는 줄기
낭창낭창하게 기쁜 몸이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내 생각 들키지 않게
가로수 옆을 지나갑니다
(그림 : 모미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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