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희경 - 우산의 고향시(詩)/시(詩) 2019. 11. 23. 09:20
창밖은 얇고 무서운 계절
사내들, 언어를 안고 걸어간다
빗속을 나는 새에 대해 들어본 적 없지만
방금, 공중을 지나는 것이 있었다
꽉 쥔 주먹이 하얗게 돋는다 나는
빈자리마다 앉아 있다 그곳에도 나는 있고
놀란 표정이 잠든 얼굴들, 떠내려간다
그것은 새였을지도 모른다
사내들 흘린 것을 줍기 위해 돌아서고
젖어가는 코르덴 바지는 슬프다
우산은 그렇게 태어난다 우리는
젖은 채 태어나고 젖으려고 사는 것들
답 없는 질문처럼 꼭 그렇게
지금의 우산의 색을 떠올릴 시간
얌전히 들어서는 어둡고 익숙한
곁에 머물고 이따금 스치던 손의 차가움,
아무도 울지 않는 이런 날엔 또 모두가 울고
날아간 것은 새들의 아득한 꿈이었을지도
젖어가는 것은 속속들이 빗물이었을지도(그림 : 신운주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병춘 - 워낭 소리 (0) 2019.11.23 최정신 - 하조대 연가 (0) 2019.11.23 최정신 - 골목을 수배합니다 (0) 2019.11.23 윤일균 - 청미천에서 (0) 2019.11.20 나병춘 - 강아지풀 (0) 2019.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