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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 위해서는
토막토막 잘려야 했다
잘리는 것이 사는 것이고
죽지 않는 것이 행운인 것인가
접시 물에 잘린 상처를 묽히면서
토끼처럼 초록귀를 세워 두리번거렸다
간신히 잎을 내고 뿌리를 내면
다시 토막 나 생이별이 시작되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나비 한 마리도 날지 않는 공간
밑동이라도 크면
누군가의 쉴 자리가 될 수 있을 텐데
토막토막 잘려야만
당신 가까이 갈 수 있으니
이 몸이 정녕 행운목이라면
내게 물을 주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그림 : 이임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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