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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장화 신고 11월이 온다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두 발로 저벅저벅 걸어온다
턱선이 싸늘한 11월이다
면도날을 장전한 11월이다
내 눈빛이 낙엽처럼 쓰렁쓰렁 잘려나가고
예리하게 도려진 내가 나를
절벽처럼 마주 보는 11월이다
꼿꼿이 서서 견뎌야하는 11월이다
쓰러지고 싶어도 쓰러지지 못하는 직립의 11월이다
헐벗은 11월이다
외로움과 외로움이 직방으로 마주보는 11월이다
12월보다 더 추운 11월이다
사람들은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머플러를 두르고 모자를 쓰고
연인들은 서로의 허리를 향해 뱀처럼 스며든다
더 이상 각을 세울 수 없을 때
11월은 12월 앞에 시린 무릎을 꺽는다
(그림 : 정인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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