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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은 - 10 년시(詩)/이화은 2019. 9. 16. 21:59
십 년 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귀때기 새파란
청보리 같은 당신이 물었다
우리는 십 년을 채 썰어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였다
십 년을 곱게 빚어 아이를 만들었다
집을 장만하고도 십 년은 야곱의 우물처럼
찰랑찰랑 늘 거기 있었다
반백의 당신이 문득 십 년을 뒤적일 때
당신의 옆얼굴이 조금 쓸쓸해 보였을 뿐
십 년은 자고 나도 자고 나도 다시 십 년이었다
줄어들지 않는 쌀독이었다
어느 날 당신이 다시 물었다
천천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십 년 후에 우리는 어떻게 될까
깜짝 놀라 돌아보니
그 많은 십 년을 누가 다 먹었을까
청보리 밭은 벌써 갈아엎었다하고
십 년이 수북하던 바구니는 텅 비었다
십 년만 십 년만
십 년을 입에 달고 살던 어머니는
잔디가 자라지 않는 척박한 봉분이 되었다
도둑맞은 십 년은 뭉게뭉게 구름이었나
신기루였을까
밥알이 모래알처럼 버석거린다
(그림 : 박용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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