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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 어머니의 밥상시(詩)/시(詩) 2019. 8. 26. 14:24
예나 이제나
어머니 밥상은 매한가지다
묵은 배추김치에
멸치 두세 마리 가라앉은 된장국에
젓갈에 마늘장아찌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리밥 대신 쌀밥이다
어머니 살기 좋아졌지요
냉장고도 있고
세탁기도 있고
모든 기계가 척척 심어주고
제초제를 뿌리고 비닐만 씌워주면
오뉴월 땡볕에 진종일 콩밭에 나앉아
그놈의 김을 매지 않아도 되고요
그러나 짐짓 물어보는 나의 물음에
어머니의 대답은 시큰둥하다
좋아지면 뭣한다냐 농사짓고 산다 하면
총각이 시집 올 처녀를 구하지 못하는 시상인디
이런 시상 난생 처음 살아야 그뿐인 줄 아냐
사람이 죽어도 마을에 상여 멜 장정이 없어야
지난 봄에 아랫말 상돈이 아부지가 죽었는디
저승 가는 사람을 상여소리도 없이
식구끼리 리야까에 싣고 뒷산에 갖다 묻었단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며 사흘 낮 사흘 밤
마을이 온통 초상이고 축제였는디......
밥술을 뜨는 둥 마는 둥하다가
어머니는 숟갈을 놓으시며 한숨을 쉬었다
봄이 와도 이제 들에 나가 씨 뿌릴 맘이 안 생겨야
쭉정이만 날릴 가실마당을 생각하면(그림 : 변응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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