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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쉬지 않고 그대를 향해 흐르는 것은
검푸른 이끼가 바위를 앞세워 발목을 붙들지 않으려 함이니
흐린 날이든 바람이 요란하거나 산천지 온몸을 적신 날도
내 안의 하늘을 흘리지 않고 마음 넓혀 가는 바다 되려 함이니
살점을 뜯어 먹히고서야 비로서 돋아나는 물새의 날개와
어느 지친 여름날 야트막한 물가를 만나
다슬기의 푸른 점액으로 번진
싱싱한 웃음이 그대 가슴에 남게 되는 일이니
내가 쉬지 않고 그대를 향해 흐르는 것은
마음 열 수 있는 데까지 열어 가는 유일한 살결을 닮은 물이니
한 장 한 장 무거운 옷 다 벗고 환하게 드러난 맨 살의 영혼을 가지려 함이니
씻기고 덜어내도 모자라는 허울들 그대에게 다 들켜버려 더는 흐를 수 없는 일 있을까
남은 흔적도 함께 흘러가는 물이 되려 함이니
오래 오래 그대 내 발치 끝을 부여잡은 아침마다
물빛 넘치는 그대 눈을 씻어 더 고운 물빛 되돌려 주려 함이니
(그림 : 박운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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