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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숙 - 반곡지 버드나무시(詩)/허영숙 2019. 7. 19. 22:57
억지로 데려다 놓은 사람처럼 겉돌던 여자
저수지에 발이 묶였다
할 말을 다 쓰려고
바람 불 때 마다 구겨지는 화선지 결이 팽팽해지기를 기다린지 오래
그동안 붓솔의 길이만 자라
아무것도 쓰지 못한 저수지에는 초록 낙관의 그림자만 서늘하다
자꾸만 휘어지는 문장들이 서럽게 울 때는
붓을 거머쥔 손에서 푸른빛이 스스로 죽고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초서체의 말들
쓰지도 못하고 물밑에 가라앉는다
백년을 늙어도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는 물가
모천으로 가는 연어처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참았던 말을 쏟아 낼 일필의 그때를 기다리는 것
버드나무 그 여자
바라보는 건너편 여자
뭉클한 구름이 뒤꿈치를 들고
물 위를 띄엄띄엄 건너간다(그림 : 강석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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