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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나무 꽃을 이층이 보고 있더라
그걸 이층이 삼층에게 전해주더라
그러는 사이 둥치는 혼신으로 허공을 받치고 있더라
한 나무가 사랑을 앓고 있더라
그걸 여름이 가을에게 귀뜸하더라
그러는 사이 푸르렀던 말들 가지에 부산하더라
꽃등(燈)이라, 왜 높은 곳에 꽃을 매다느냐고 물었지
설명할 수 없는 곳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을 거야
내려오지 못하는 높이를 비추고 싶다 했을 거야
성품이 같은 사람은 만나지 않게 한다는 말이 있었지
이층에서 내려올 수 없는 사람을 생각해서
창 곁에 종일 붙박여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기억해서
꽃이 위를 향하지
백합나무 꽃이 이층을 보고 있더라
그걸 네가 내게 전해주고 있더라
지상이라는 저 아래 아득해 이층이 허공이더라
(그림 : 임은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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