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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 물은 왜 너에게서 나에게로 흘러오나시(詩)/이대흠 2019. 5. 17. 08:58
그녀는 내게 손목을 주었을 뿐인데 내 손바닥에 강이 생겼다
어린 그녀의 손금 같은 강이 흐르고
강가의 돌멩이처럼 작아진 나는
굳어버린 귀로 물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손금의 강에 스며든 말은 얼마나 많은 모래 알갱이가 되었을까
희미하게 그녀가 모래알처럼 웃을 때 나는
모래알 같은 그녀의 웃음에 조금씩 부서져내렸다
그녀의 손목이 모래톱 같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 내일은 모래가 되고
오지 않을 손목에 머리를 기대고 싶었던 나는
울며 졸이며 굳어가는 조청 같은 나의 생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여린 손목 하나를 강으로 놓아두었다
(그림 : 박지오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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