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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민 - 비망록에서
    시(詩)/시(詩) 2019. 4. 19. 13:06

     

    요란한 불자동차 소리 나더니

    깃발, 옷가지, 손수건 따위를 흔들며 소리치는

    신문팔이, 구두닦이, 막노동자, 노점상, 지게꾼 같은

    누추한 몰골의 젊은이들을 뒷칸에 잔뜩 태운 소방차가 와 멎었다

    많은 인파가 몰려있는 을지로 입구 내무부 청사 앞

    1960년 4월 20일

    온 장안이 데모대의 함성으로 뒤덮이고

    사방에선 총성이 울리고

    신문사가 불타는 등, 거리는 질서가 무너지고

    영구집권을 꿈꾸는 불의와 부정의 무리들 물러가라 소리치며

    폭압으로부터의 해방과 3.15부정선거의 무효화를 요구하는

    데모대의 함성이 요동치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서 함성이 일고

    저녁 어스름이 깔린 거리에서

    나는 비겁한 방관자였다

    내무부 청사 정면에는 기관총인 듯한

    무기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민중의 자유를 억압한 '자유당'

    그 망령의 방패가 단말마를 맞아 곧 불을 뿜을 듯

    이 쪽을 향하고 있었다

    "모두들 내리시오. 저 놈들을 깔아뭉개겠소"

    운전석에 앉은 시커먼 얼굴의

    이미 사상을 띤 젊은이가 외쳤다

    놀란 사람들은 우르르 뛰어내렸다

    순간 청사쪽에서 총성이 울리고

    비명 소리가 나고 몇 사람이 쓰러졌다

    부르릉 시동을 건 소방차가

    그 정면으로 돌입했다

    '쾅!'

    총소리가 멎고, 누구랄 것도 없이

    와! 박수가 터지고

    "만세! 만세!"를 불렀다

    그때 학생들이 앞장선 4.19의 혁명은

    어쩌면 이렇게 소위 양아치들, 밑바닥 민초들의 가담으로

    승리했는지도 모른다

    (그림 : 정탁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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