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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언 - 바닷가 떡집시(詩)/시(詩) 2019. 4. 7. 11:26
기와집 처마 밑에 호박고지가 내걸렸다
바닷바람과 햇살을 받아 꾸덕꾸덕해지면
찹쌀가루를 뿌려 호박범벅을
해 먹을 요량이란다
눈보라가 길을 뚝 끊은 어느 날,
입이 심심할 때 떼어 먹으면 얼마나 달까
어쩌다 내가 바닷가 마을을 다시 찾아올 때
그 날이 떡 쪄먹는 날이면 좋겠다
빙 둘러앉은 섬들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슬고슬 눈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거기에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얹으면
햇살과 바람과 나무도,
호랑가시나무 열매를 쪼아 먹던 새도,
서쪽바다 파도도 흠흠 기침을 할 것이다
손가락에 찐득하게 들러붙은 떡을 떼어 먹다가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눈가루 뿌옇게 흩날리면
켜켜이 물결 지는 바닷가를 걸어도 볼 일
눈이 펑펑 쏟아질 거라는 일기예보가 나오면
지체 없이 그 집으로 떠날 참이다
(그림 : 이재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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