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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 - 쉘부르의 우산시(詩)/시(詩) 2019. 3. 10. 10:08
미아삼거리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어디서 비를 피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
쉘부르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차창 너무 주유소 앞 우산 하나가 몸을 웅크린 채 비를 맞고 있다
한쪽 다리를 저는 청년이 다가가 우산이 되어준다
강물같이 흐르는 시간의 버스를 타고
기억 너머 흑백의 시간으로 거슬러 흐르다 보면
쉘부르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서 있고
젖은 내 어깨를 감싸며
우산을 받쳐주던,
사랑을 노래하던 쉘부르의 우산은
언제부턴가 슬픈 이별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쉘부르의 우산은
비를 맞으며
어둡고 차가운 시간 속으로 멀어져간다
버스는 정체되어 교차로에 멈춰서고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 한 켠 젖은 추억의 영상을 떠올리듯
차창 밖 내리는 비의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신호등이 바뀌면서 차는 다시 속력을 내고
빗길을 달려간다
비 내리는 쉘부르의 통기타 가수는
목소리를 잃은 지 이미 오래이고
늙은 디제이도 세상을 떠나버렸다
팔아야 할 추억의 한 페이지조차 남아 있지 않은
우산장수 마저 골목에서 사라져버린
쉘부르엔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는다
잃어버린 우산을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다
내리는 비를 향해 버스가 달리면 달릴수록
쉘부르는 점점 멀어져 가고
한 여자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홀로 걸어가고 있다
(그림 : 전소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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