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영옥 - 맛있었던 것들시(詩)/시(詩) 2019. 3. 6. 16:20
실한 풋고추들이 쪼개져 있었다.
쪼개진 풋고추 처음 보여준 사람은
고추전 잘 부치시는 우리 어머니
풋고추 싱그럽게 채반 가득한 꿈이
아침나절 덮어와 어머니 곁에 왔다
함께 기우는 목숨 언저리 햇살
한껏 잡아당겨 서로를
찬찬히 눈여겨두는
나물 그득한 점심이 달다
내가 아는 모든 것, 어머니가
처음으로 비춰준 것들이었다
떠나서 배운 이 골목 저 골목은
끌고 다니며 발길질만 했다
두 눈 가리우고 끌려 다녀
어디가 어디인지 하나도 모른다
이제야 눈가리개 풀고
어머니, 맛있게 잡수시는 곁에서
맛있었던 지식(知識)들 햇살 채반에 널어본다
모조리 어머니가 먹여주신 것들이다
다시 나는 끌려 다닐 것이다
다만 여기 이 점심이,
죽을 것 같은 날짜를 덮어 주리라고
어머니 곁에 앉은 김에 꾹꾹 먹는다(사진 : 친환경 농산물을 사랑하는 사람들 카페)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성학 - 그런 거 같은 거 (0) 2019.03.07 정복여 - 은밀한 봄 (0) 2019.03.07 한영옥 - 나는, (0) 2019.03.06 한영옥 - 뚝 그치고 (0) 2019.03.06 김진광 - 벚꽃 핀 날 (0) 2019.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