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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 순천만 갈대숲시(詩)/복효근 2018. 12. 3. 22:49
순천만에 와서
소나무나 참나무숲처럼 갈대들이,
그 연약한 갈대들이 당당히 숲이라 불리는 까닭을 알겠다
그 줄기가 튼튼해서가 아니었다
나이테가 굵어서가 아니었다
바람이 몰려올 적마다
각기 안테나를 길게 뽑아들고
바로 곁에 서 있는 그대를 천리처럼 안타까이 부르는 아득한 몸짓
칼바람에 앞엣 놈이 넘어지면
뒤엣 놈이 받아서 함께 쓰러지며
같은 동작으로 다시 일어서는 탄력의 떼춤을 보았다
그러나 갈대가 한사코 꺾어지지 않기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갈대는 갈 때를 안다
엄동의 긴 밤을 청둥오리떼 날아들자
스스로 제 몸 꺾어
털스웨터처럼 갈꽃자리 깔아주는 것 보았다
그 멀고 긴 쓰러짐의 힘이
이듬해 다시 숲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리라
혼자서 겨울 먼 길을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순천만에 와서 비로소
나를 받쳐준, 혹은 함께 쓰러지던 무수한 허리들이 그리워
휴대전화 안테나를 길게 뽑는다(그림 : 김상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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