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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 포도밭 엽서시(詩)/김명인 2018. 9. 11. 19:36
한 해의 농사가 단물로만 끝나는 것 아니지만
연록의 세세를 저온 창고 가득 쟁이려면
바닷바람 머금은 그해의 포도는 가을 깊도록
여름을 일렁여야 한다, 초록을 뒤집던
잎잎의 손사래 사이로 송이송이
열매들은 다투어 초롱을 들어 보이지
해와 달 어지간히 베어 물고
어느새 무거워진 보라 알알이 가두어지면
끝물이 허전한 포도밭 머리
늙은 나무의 노쇠를 갈아치우던
노역들도 지쳐갔는지
칡 넌출을 덮어쓴 저 언덕 배미
예전의 포도밭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
이제 드물다, 나무는 자라고 늙어가는 것,
포도밭이 포도의 기억으로 우거졌으니
억새 흔드는 이 가을도 어지간히 저를 지나친 셈이다
(그림 : 김대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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