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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문성해 2018. 4. 24. 20:56

     

    동성로를 걷다가

    너는 생각난 듯 털복숭이 과일이 잔뜩 쌓인

    어떤 리어카 앞으로 내 손목을 끌었는데

    연필깎이 칼이 여럿 달린 그 앞에서

    너는 한 개를 잘도 깎아

    진물 아린 초록을 내게 내밀었는데

    여름이 꼭 그렇게 생겼을 거야

    다래랑도 비슷하고

     

    리어카 앞에는 우리 말고도

    돌돌돌 그것을 까서 먹던 사람들 여럿 있었는데

    양볼 가득 알밤을 품은 다람쥐들 같았는데

    털복숭이들은 리어카 밖으로 기어나올 듯 고물거렸는데

    가만 있어도 잇새로 신웃음이 배어나왔는데

     

    이제 동성로 한복판에 그런 리어카는 없다

    간혹 보이는 털복숭이들은 유리 진열장속에서

    알록달록 조명을 입고 있다가

    홀라당 털옷이 벗겨지기 무섭게

    믹서기에 무지막지 갈릴 뿐

     

    이제 동성로 한 복판에서 만나도 너는 그것을 사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깎아주지 않는다

    그때처럼 신 침을 흘릴 수는 있어도

    우리에게 다시는 초록이 몸을 내밀지 않는다

    털복숭이 리어카가 사라진 동성로

    한때 그 속에 명징한 초록이 있었다 

    동성로(東城路) : 대구광역시 중구의 법정동이자, 대구역네거리에서 중앙파출소에 이르는 구간에 조성된 대구광역시의 대표적인 번화가의 명칭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법정동 동성로1가~3가에 해당하며, 행정동명으로는 동성로1~2가가 성내1동, 동성로3가는 성내2동에 해당한다.

    과거 대구읍성의 성곽이 있었으나, 성곽이 사라진 자리가 도로가 되었고, 그 성곽의 동쪽에 해당하는 터는 현재의 '동성로'가 조성되었다.

    따라서 명칭이나 상권 자체로는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 : 김성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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