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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 되도록
나는 한 번도 연등을 달아본 적이 없네
연등을 다는 자의 간절한 마음이 되어 본 적이 없네
연등을 다는 일은
나를 작게 둥글려 연등 속에 넣고
바람과 빗속에 흔들리는 일
집에 돌아와 누워도
흔들리는 연등을 생각하는 일
어떤 자는 제 몸을 활 활 불사르고
어떤 자는 일찍이 심지를 끄고
어떤 자는 바람에 균형을 잡고
나는 그 중 가장 나중의 자가 되고 싶어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연등의 시절이 오면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사립문짝에
발그레 뺨 붉힌 그것을 매달고 싶어
등불 위로 뜨거움을 참고 내려앉는 어둠을
내가 나를 보듯 들여다보고 싶어
연등을 켜고 끌 때
내 얼굴을 웃음을 숨소리를
생각하고 싶어
(그림 : 김주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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