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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 외동, 외등시(詩)/천양희 2017. 12. 12. 20:56
나는 오래 여기 서 있었습니다 외동 1번지
다시는 저 다리 위에 저 정거장엔 가지 않으리라
내려가서 길바닥에 주저앉지 않으리라
갈퀴별자리 옮겨 앉는 날 밤이면
내 청춘의 붉은 바퀴 굴러가다 멈춘 것 보입니다
가슴을 조금 움직여 두근거려 보지만
그 길 따라 오는 사람 있겠습니까
나는 꿈을 가지지 않기로 합니다
날마다 골목이 나를 불러 꿈을 주고
날마다 골목이 나를 불러 꿈을 주고
세상 구석까지 따라가게 합니다
세상아, 너는 아프구나, 나는 얼굴을 돌리고 눈만 껌벅거렸습니다
늙은 느릅나무 뒤에는 주름진 황톳길이 구불텅거리고
어슬렁거리는 개들 옆으로
저 혼자 젖는 취객들이 많이
어두워져 돌아오고 있습니다
오늘밤 나는
신열에 들뜬 듯 머리를 싸매고
풀섶에 숨어 우는 벌레들의 울음을
사람의 말로 다 적기로 합니다
산간벽지 떠돌다
잔가지 생잎 쓸린 잡풀들
몰래 숨어든 외동 1번지 느릅나무 곁에서.
(그림 :김성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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